다음날, PC들은 가라지와 겨가 섞인 쌀과 상해가는 밀가루라도 고대하는 난민들에게 배급하기 위해 일찌감치 난민지구로 나옵니다. 게렌은 질서 유지를 위해, 자치수비대에 요청해 비번인 5명의 부하를 차출해왔고, "오늘도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거칠게 기율을 잡습니다.
루카가 탁월한 행정 역량을 발휘해 식량배급은 순조로이 되는 듯 했으나, 중간에 회색머리 중년 사내 한 명이 통사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애를 배고 노부모는 앓아누워 일하러 갈 형편도 못된다며, 식량을 따로 조금 빌려달라고 사정합니다. 게렌은 뒤에 줄선 사람들에게나 사정해보라며 냉랭하게 거절합니다. 중년 사내가 급기야 식량자루를 잡아채 달아나려 하자, 게렌과 경비병은 곧바로 잡아 경비대 초소로 연행합니다.
그런 엄중한 태도 덕에 식량배급은 순조로이 마무리되어갑니다. 해가 저물 무렵, 한 난민 소년이 아버지 대신 배급을 받으러 왔다며 찾아옵니다. 아버지 베름 씨는 신식공방에 고용된 걸로 되어 있었지만, 소년의 말로는 다쳐서 일을 못 나가게 되었다는 것. 루카는 식량 배급을 받으면 아버지는 퇴직한다고 통보할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 말에 소년은 루카의 허리에 매달려 악을 쓰고 경비대들은 소년을 잡아떼 쫓아내려 합니다. 루카는 "셈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며, 난민 소년 크렘을 아일렌 의류상의 도제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크렘은 아일렌 공방의 식구가 되었지만, 총감독 마일즈는 루카에게 크렘이 까막눈에 동네 지리도 옷감을 다루는 법도 아는게 전무하다며 걱정합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공방에서 잔심부름만 맡던 크렘이 결국 금단추를 훔쳐갔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오늘의 명장면: 크렘을 도제로 맞다.
<_루카> 아이를 똑바로 바라봅니다. "규칙이 그러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 물론 아버지께서 공방을 퇴직하시면 그 때부터는 배급 대상자가 된다. 아버지께서는 공방을 완전히 그만두셨느냐."
<_마스터> 꼬마: ".... 아빤 일 못 나가요."
<_마스터> 뭔가 억눌린 듯한 눈빛으로 루카를 마주 바라봅니다.
<_루카> "네가 여기서 배급을 받으면, 화살 제작 공방에, 베름 씨가 퇴직한다고 통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으냐."
<_마스터> 꼬마: "..... 하아. 하아..."
<_마스터> 주먹을 꼭 쥐고 이를 악문 채 어깨를 들썩거립니다.
<_마스터> 그러다 루카에게 달려들어 허리춤을 붙잡고 매달려요.
<_마스터> 꼬마: "... 어쨌든 아빤 지금은 일 못하신다고요! 우리집도 실업자란 말예요!"
<_마스터> 꼬마: "... 일당도 제대로 못 받고 떼였는데... 흑.."
<_루카> 차분하게 꼬마를 내려다봅니다. "규정은 약속이다. 너는 약속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_마스터> 꼬마: "이 세상에 약속 지키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요?!"
<_마스터>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지르며 노려봅니다.
<_루카> "너는 남들이 씻지 않으면, 같이 몸을 씻지 않을 것이냐. 스스로의 마음가짐의 문제다. 그렇지만, 울지 않는 것은 장하구나."
<_루카> "셈은 할 줄 아느냐."
<_마스터> 음. ;
<_마스터> 그때 곁에 있던 경비대원이 나서서 꼬마를 잡아떼 쫓아냅니다.
<_마스터> "이 지저분한 꼬마놈! 루카 양을 그만 괴롭혀!!"
<_마스터> "규칙을 지키란 말야! 엉?! 못 알아쳐먹겠냐?!!"
<_루카> "멈추세요. 아이는 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저를 괴롭힌 게 아닙니다."
<_마스터> 경비대원은 그 말에 멈칫.
<게렌> "놔 줘라."
<_마스터> 쭈뼛쭈뼛거리며,
<_마스터> "루카 양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뭐.. 허허. 하긴 뭐 꼬마앤데 뭐.."
<_마스터> 긁적긁적.
<_루카> 경비대원을 바라보며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게렌>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_마스터> 한편 꼬마는 의외의 친절에 멍하니 서서 이쪽을 약간 경계어린 눈빛으로 살피고 있어요.
<_루카> "셈은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몸을 숙여서 꼬마에게 눈높이를 맞춥니다.
<_마스터> "... 예! 그건 왜 묻죠?"
<_루카> "규정이니 배급은 줄 수 없으나, 부모가 아파 누워 계시는데 자식된 자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내일부터 아일렌에 나오도록 하거라."
<_마스터> 꼬마: "네?"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게렌> "땡 잡았군." 심드렁하게 말합니다.
<_루카> "그러고보니 아직 네 이름도 묻지 않았구나."
<_마스터> 꼬마: "... 제 이름은 크렘이에요."
<_마스터> 꼬마: "... 누나는요?"
<_루카> 품에서 가게 상표가 박힌 손수건을 꺼내 줍니다. "나는 아일렌 부띠끄의 루카다. 내일부터 우리 가게에서 일하도록 해라."
<_마스터> 꼬마는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비단 손수건을 소중히 받아듭니다.
<_루카> "가게에 가서 이름을 대고 손수건을 보여 주면 일거리를 줄 것이다."
<_마스터> 꼬마: "... 저, 정말이에요?!"
<_루카> 빙긋이 웃습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느냐."
<_마스터> 꼬마: "... 네, 넷!! 여, 열심히 할게요!!"
<_마스터> 꼬마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_루카>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일부터는 힘들 테니 들어가서 푹 쉬고, 해 뜨기 전에 가게로 나오너라."
<_마스터> 크렘: ".. 네, 넷!!"
<게렌> 아이가 가면 "일자리 구하는 게 무척 쉬운 거였군요. 경쟁자들보다 먼저 사장 허리를 붙들면서 가족 사정을 읊으면 되는 거라니." 약간은 비꼬는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_루카> "가게에 대해 신의가 깊은 직원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영특해 보이는 아이 스물을 거두어서 키우면, 신의 있는 직원 하나는 얻을 수 있습니다."
<_루카> 담담하게 되받습니다.
<게렌> 같이 걸으면서 "저 아이가 그렇게 영특해 보이던가요? 난민촌을 한번 둘러보면 저 아이보다 영특한 꼬마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만...." 이라고 아까의 말에 슬쩍 꼬투리를 잡습니다.
<_루카> "그런 아이를 발견하거든 꼭 좀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10년 뒤에 아일렌을 위해 성심을 다해 일해줄 직원이 꼭 필요하니까요."
<게렌> 웃으면서 더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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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션에선 일단 식량배급을 하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다뤄볼 생각이었습니다. 서로 앞서려 실랑이를 벌이고, 배급을 더 받으려 다시 줄에 끼어들거나 남의 이름을 댄다든지... 하는 건 게렌 등이 규율을 엄중히 잡고, 루카가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탓에 어렵게 되버렸고요, 대신 인정에 호소하는 쪽이 나왔죠. (사실 다른 꺼리가 얼마 없어 살짝 불안하기도;)
소년 크렘 쪽은... 원래 PC들의 지갑을 소매치기하고, 그를 뒤쫓아가면 집안 사정을 알고 끼어들게 된다는 전형적인 전개였습니다. 크렘의 아버지 베름 씨는 신식 공방에서 일하다, 일자리를 둔 뒷거래/다툼에 밀려 린치를 당하고 자리를 잃었단 설정이었죠. 감독에게 뇌물이나 알선료를 쥐어줘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또 난민들끼리도 조직을 짜고 가입비를 요구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죠. 원래 그런 도입부를 위한 상투적 설정이, 루카가 동정심을 품고 도제로 맞았던 점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난민들의 부적응과 범죄도 다룰 수 있었고요 ('난 까막눈에 기술도 없으니 이대로 잔심부름만 하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런 측면들에서 좀더 플레이어들과 논의하며 장면을 만들어가서 좋았습니다. 게렌과 루카가 대비를 이뤘던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개인적으로 세부적인 시나리오 준비 없이 그때그때 흐름을 살리며 의외의 전개가 나오는 점들이 새롭고 재미있네요 (저로선 일종의 마스터링 변신..인 듯도^^).
CP: 2CP... 였죠?
Posted by 애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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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끼리 새로 결성한 RPG팀입니다. :D
GURPS로 실피에나 배경에서 길드타운 난민대책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애스디